|특별기획|의료법·약사법 불균형 조항 진단
2006년 봄, 의약계의 건곤일척의 한판승이 예상된다. 의약분업 평가와 맞물려 양측이 불균형 법 조항에 대한 개정을 전면에 내세울 방침인 탓이다. 여기에 내년 봄과 가을에는 각각 의사회와 약사회의 회장선거가 예정돼 있다. 각 후보의 선명성 경쟁으로 법 개정 문제는 의약계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규정들과 주장, 논리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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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계, 의심처방·임의조제 전면전 예고
의약계, 불균형 벌칙조항 서로 많다
복지부, 내년 봄 '불균형 법조항' 본격 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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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는 PPA 등 판매금지된 의약품이 계속 처방, 조제됐다는 문제가 불거졌다. 약사회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처방한 의사에겐 처벌조항이 없고, 약사만 업무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는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복지부는 국감 업무보고에서 의료법을 적극 해석, 의사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두달 남짓 지난 지금, 복지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있다. 바로 의료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 처방한 의사도 처벌”...'벌금 300만원' 신설
식약청이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측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사용금지 조치가 내려진 의약품에 대한 처방은 3만1,056건이 이뤄졌다. 그에 따른 조제 역시 1만2,364건이 발생, 환자에게 금기약물이 투여됐다.
복지부는 PPA 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사용금지된 약물이 처방·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 대안이 바로 의료법 개정이다. 의사에게 이들 약물에 대한 처방의무를 강제화함으로써 조제를 통한 투약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이미 지난 9월22일 국회 업무보고 자료를 통해서도 '잘못 처방한 의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아예 의료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위해약물이 국민에게 투약되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대표적인 불균형 조항”이라는 약사회의 압력도 전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의 방안은 '의료법 제18조의 2(처방전의 작성 및 교부)'에 '2항'을 별도로 신설하는 것. 대신 기존 조항은 하나씩 뒤로 밀려난다.
복지부가 준비하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의사 또는 치과의사는 조제금지의약품 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병용금기의약품을 처방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벌칙으로는 300만원 이하(제69조에 삽입)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행정처분기준도 약사에게 준하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번 PPA 조제와 같이 수거·폐기 명령이 내려진 의약품을 조제, 판매할 경우 약사에게 적용되고 있는 업무정지 3일∼1개월(약사법 시행규칙 제57조)을 준용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에 대해 “병합처벌이 가능하다”면서 “행정처분기준은 관련부서에서 만들어야 하지만 약사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항은 의약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는 처벌조항의 신설 때문에, 약사는 약사법에 비해 처벌강도가 낮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약사회는 법 규정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1년 이하의 징역' 등 처벌조항도 의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복지부 의사의 처벌조항 신설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복지부, 의심처방 확인 '응대의무' 검토중
복지부는 약사가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의심처방 확인의무에 준하는 의사의 응대의무를 법제화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약사의 의심처방 확인 의무는 법 제23조2항에 규정돼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차수에 따라 자격정지 15일∼1개월, 자격취소의 처분을 받게 된다.
현재 약사회에서는 의심처방에 대한 약사의 확인 요청에 대해 처방의사는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것과 현재 병의원에서 무자격자에 의해 의심처방 확인이 이뤄지는 관행도 시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누차 밝혀온 바 있다.
최근에는 복지부에 '의심'의 개념에 대해 질의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선뜻 발걸음을 떼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당초 수용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최근에는 '보류'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회와 약사회에서 매우 민감해하는 사안인 만큼 신중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직까지 양측에 의견을 들어보지 못한 것도 복지부의 부담을 일면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복지부는 향후 신설될 조제금지의약품에 대한 처방금지 조항으로도 약사의 불만사항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의심처방 확인의무와 응대의무가 국민보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어 큰 방향은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심처방 확인의무에 대해 약사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따라서 의사의 협조 의무조항을 만들기 위해 내부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검토과정에서 양측의 의견조회를 거치는 등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심처방 확인 못하면 조제거부해도 정당”
약사회는 의심처방 확인의무와 관련 의사의 비협조로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의사의 '응대의무화'와 함께 이런 경우 조제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는지도 약사들의 주요 관심사다.
정당한 이유없이 조제거부를 할 경우 1년 이하 300만원의 형사처벌이 이뤄진다. 또, 차수에 따라 자격정지 15일∼1개월, 면허취소 등의 무거운 행정처분이 뒤따른다.
복지부는 일단 의사의 비협조로 의심처방을 확인하지 못했을 경우 '조제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약사가 의심나는 점을 의사에게 문의했으나, 진료 등을 이유로 응대하지 못했다면 환자에게 의심처방에 대한 조제를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곧 약사는 병용금기 또는 조제금지의약품의 처방전에 대해 확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는 방문하는 약국마다 이같은 상황이 재연되면 결국 약을 복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적어도 복지부의 유권해석이 무게를 가지려면 의사의 응대의무가 법에 명시돼야 한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과징금 산정기준, 전체 매출서 약값 제외 타당”
약사들이 불균형 조항이라고 판단하는 '관계공무원의 수거·처분 거부' 금지규정(제64조1항)에 대해 복지부는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의사는 무형의 의료서비스를, 약사는 무형의 서비스(복약지도)와 유형의 약품을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의 경우 보고 및 업무검사 등에 대해 거부하는 것은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일 수 있다. 복지부는 환자의 진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 무거운 형량을 지울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약사의 경우 진열된 약품에 대해 관계공무원이 검사 및 수거·처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이런 판단 때문에 약사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의사는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다만, 과징금 산정기준에 대해서는 약사회의 입장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약사회가 좀 더 객관적인 자료제출을 통해 개선을 요구할 경우 검토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징금은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 1일을 대신해 내는 돈. 약국은 판매업소로 분류돼 있는 만큼 도매상이나 제조업소와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복지부는 지적했다. 그러나 약사의 경우 산정기준인 '전년도 매출금액'에서 약가는 제외되는 것이 일면 타당하다고 복지부 관계자는 전했다.
현행 실거래가상환제도에서 약가마진이 인정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약값의 경우 잠시 약사를 거쳐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즉, 약값이 약사의 수입이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과징금 산정기준에서 약값을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면서 “약사회에서도 무작정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의조제·문진 등 개념 모호...복지부 “환자중심 사고” 필요
복지부 관계자들은 대개 의사가 바라보는 약사의 '임의조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임의조제의 개념자체가 불분명하고, 약사법 규정에도 없는 탓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임의조제를 굳이 해석하자면 '처방전 없이 하는 조제'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전문약과 일반약을 조제, 판매할 수 있다'는(약사법 제21조) 규정이 적용된다. 다시 말해, 의사의 처방전 없이 조제하는 경우는 '불법조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의사회는 일반의약품을 2∼3가지를 섞어 판매하는 경우까지 임의조제라고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임의조제는 약사법상 규정도 없고, 이를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의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문진금지를 규정해놓은 약사법 시행규칙 제57조 제1항 15호도 마찬가지. 복지부에서는 문진 자체가 의료행위로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해 물음표를 찍고 있다.
일반약 판매 목적이 아니라면 소비자(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약제서비스 차원에서 환자의 증상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복지부의 해석이다.
이는 복약지도(제21조6항)와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약사가 환자의 증상에 맞춰 약을 선택해주면 문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약을 판매하면서 물어보는 것은 문진행위가 아니라고 했다. 즉, 환자에게 약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복약지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에 너무 얽매여 적용하다 보면 환자에 대한 약제서비스가 불충분해질 수 있다”면서 “문진과 임의조제, 복약지도를 연계시키면 약사는 그야말로 단순 판매자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의약사 모두 직능중심의 사고에서 탈피, 환자중심의 사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환자 없는 의약분업은 존재할 수 없고, 의약사 역시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란 말이다.
2006년 봄, 의약계와 복지부가 '불균형 조항'에 대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환자중심'의 사고에 다가설지, 이심전심의 입장에서 처벌규정 완화 쪽으로 가닥을 잡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