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의료법·약사법 불균형 조항 진단
2006년 봄, 의약계의 건곤일척의 한판승이 예상된다. 의약분업 평가와 맞물려 양측이 불균형 법 조항에 대한 개정을 전면에 내세울 방침인 탓이다. 여기에 내년 봄과 가을에는 각각 의사회와 약사회의 회장선거가 예정돼 있다. 각 후보의 선명성 경쟁으로 법 개정 문제는 의약계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규정들과 주장, 논리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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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 의심처방·임의조제 전면전 예고
불균형 벌칙조항 서로 많다
복지부, 내년 봄 '불균형 법조항' 본격 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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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계가 가장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약사법 조항은 의심처방 확인의무와 임의조제 금지. 약사회는 회수·폐기 명령이 내려진 약물이 버젓이 처방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조제행위에만 처벌규정이 적용되고 있다고 목청을 키우고 있다.
반면 의사회는 임의조제가 아직까지 성행하고 있고, 이는 곧 무면허진료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약사법이 아닌 의료법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PPA약물, 의사 2만2,031건 처방, 약사 9,846건 조제
지난해 8월 이후 사용중지된 PPA(페닐프로판올아민) 함유제제를 처방한 병원은 2,190곳, 약국은 1,897곳에 달한다. 의사의 처방건수는 2만2,031건, 처방전에 의한 약사의 조제건수는 9,846건이다.
의약분업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의사나 약사 모두 위해약물을 걸러내는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약사의 경우 향후 본격 진행될 행정처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바로 의심처방 확인의무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적용되는 법 규정은 폐기·회수명령이 내려진 의약품의 판매를 금지한 약사법 제38조(의약품등의 판매질서)와 약사법 시행규칙 제57조. 현재 예상되는 행정처분은 업무정지 7일이다.
특히 이는 앞서 언급한 PPA 처방과 맞물려 있다. PPA 등 폐기·회수조치가 내려진 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는 피해가고, 조제하는 약사만 처벌받게 될 상황인 탓이다.
복지부도 국감 업무보고를 통해 의료법을 적극 확대 해석, 의사에 대해서도 처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문제는 위해약물에 대한 처방 및 조제가 PPA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판매금지 의약품인 로페콕시브 처방병원도 302곳에 이르고, 조제약국도 205곳에 달하고 있다.
의심처방 확인의무 위반, 약사만 유죄?..."의사 응대를 의무화하라"
약사법에 규정된 의심처방 확인의무는 약사의 가장 큰 불만 조항이다. 내년 봄, 의료계와의 치열한 논리전이 전개될 때 이 규정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전략이다. 약사에게는 의심내용 확인내용 의무가 부여돼 있지만, 의사에게는 응대의무가 없는 탓이다.
약사는 처방전에 의심이 나는 점이 있으면, 그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반드시 문의해야 한다. 의심나는 점을 확인한 후가 아니면 조제를 할 수도 없다.(약사법 제23조 제2항) 더욱이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에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약사법 시행규칙 89조(별표6 개별기준 14의 사)에 의해 위반차수에 따라 자격정지 15일, 1개월, 자격취소 등의 행정처분이 뒤따른다. 반면 의료법에는 협조의무도 없고, 자연 벌칙규정도 없다.
약사회 관계자는 “의사는 협조의무가 없는 만큼 면피할 수 있지만, 약사는 확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나 업무정치 처분을 받는다”면서 “최근 PPA 사태가 대표적인 예”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약사의 불만은 바로 의사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있다. 의심처방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무자격자인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사무장이 응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탓에 의사가 부재중일 때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약사회의 주장이다.
처방의사의 응대를 의무화하기 위해 의료법을 개정하거나 의심처방을 전담해줄 수 있는 센터 설립이 그것이다. 신규 센터의 설립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보건소를 활용하는 복안도 제시할 방침이다.
약사회는 이같은 개선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심처방 확인 문제가 국민 건강과 직결돼 있음을 강조할 계획이다. 자칫 약사의 권익만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면, 여론 형성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의심처방 확인 문제는 의약사가 국민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약사회의 입장이다.
“잘못된 처방, 조제거부해도 되나?”
약사는 가끔 조제거부 규정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처방의사의 비협조로 인해 의심처방을 확인하지 못해, 환자에게 약을 조제해주지 못했을 때가 그렇다.
약사법 제22조(의무 및 준수사항) 제1항에는 '약국에서 조제에 종사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는 조제의 요구가 있을 때 정당한 이유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여기에 위반 차수에 따라 자격정지 15일∼1개월 또는 면허취소의 무거운 행정처분이 부과된다.
결국 약사는 의심처방 확인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처방 의사와 응대가 없으면, 환자에게 조제해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같은 이유로 조제를 거부하는 것도 '조제거부 금지규정'의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약사회는 지적하고 있다.
약사회는 이에 대한 유권해석을 복지부에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분명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약사회측은 “이 규정은 의심처방에 대한 의사의 확인이 없으면, 환자는 계속 필요한 약을 조제받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명확한 해석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약사의 또 다른 불만은 의심처방 확인의무를 위반할 경우 처벌은 물론 심사청구 과정에서 약제비를 삭감 당한다는 것이다. 약사에게 급여 및 비급여의 구분 오류, 허가사항 범위 여부 등에 대한 확인과 시정책임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의료계, 임의조제 여전...“임의조제=무면허진료행위”
약사회가 의심처방 확인에 대한 의사의 응대의무를 공략하고 있는 데 맞서 의료계는 임의조제를 집중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의료계의 주장처럼 약사의 임의조제나 변경·수정조제, 대체조제 위반사례는 분업 이후 계속 적발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 200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의약분업 위반행위 단속실적에 따르면 임의조제 약국은 157곳, 변경·수정조제 312곳, 대체조제 290곳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한달간 의약분업 5년을 맞아 복지부 주관으로 실시한 특별점검 결과에서도 이같은 위반행위가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약국 34곳과 의원 3곳에서 총 42건의 분업위반 행위가 적발됐다. 약국의 경우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위반이 각각 4건씩 나타났고, 변경조제도 1건이 포함됐다.
의료계의 시각은 '임의조제는 곧 무면허진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반약에 대해서는 의사의 처방 없이도 조제와 복약지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의료계의 주장대로 임의조제가 곧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면, 약사의 운신폭은 훨씬 좁아지게 된다.
특히 임의조제 행위는 분업 이전부터 고착된 것이고, 아직까지 근절되고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란 특수한 보건의료환경에 의해 약사가 유사의료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여기에 임의조제 행위와 관련 약국은 처벌받지만, 약사는 무면허진료행위로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약분업에 관련한 약사법 위반 약국은 약사법에 따라 벌칙을 부여받아야 하고, 해당 약사는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약분업 이후 총 190건의 임의조제를 적발, 행정처분을 했으나, 해당 약사가 의료법에 의한 무면허의료행위 처벌은 받은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중앙일보의 기사(7월1일)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약사법상 임의조제를 규정해놓은 조항은 약사법 제21조(의약품의 조제) 제4항. 이 규정에 따르면 '의사 또는 치과의사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고, 약사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에 의해 전문약과 일반약을 조제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과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약사법 시행규칙 제89조(별표6, 개별기준 14의 가)에 따라 1차 자격정지 15일, 2차 자격정지 1개월, 3차 면허취소의 행정처분도 받게 된다.
행정처분 기준에는 '약사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에 의하지 아니하고 전문의약품 또는 일반의약품을 조제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처럼 처방전에 의하지 않은 전문약이나 일반약의 조제가 곧 '임의진단'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임의진단 및 그 처방에 따른 의약품의 조제'는 바로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임의조제가 의료계의 주장처럼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면 처벌의 강도는 훨씬 강해진다. 무면허의료행위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제25조 제1항)에 따라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행위를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별도 경고 등의 조치 없이 곧바로 면허취소라는 강력한 행정처분도 뒤따른다.
법 집행과정에서 일선 보건소에서 임의조제에 대한 단속과 행정처분은 이뤄지면서도 의료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의료계의 불평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의료법을 적극 적용할 경우 임의조제로 인한 국민건강 위해요인과 분업위반 행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편 약사의 경우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일반약에 대한 조제와 복약지도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임의조제와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문제점도 없지 않다.
의료계 “약사의 문진행위, 의료법으로 처벌하라”
의료계가 약사의 임의조제와 연계, 타깃을 삼고 있는 조항은 약사의 무면허진료행위를 규정한 약사법 시행규칙 제57조.
'의약품 등의 유통체계 확립 및 판매질서 유지를 위한 준수사항'에 대한 규정에 따라 약사는 진단을 하고 그에 따른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
또, 진단을 목적으로 한 건강상담을 통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 역시 금지돼 있다. 특히 진단을 목적으로 환자의 환부를 보거나, 만지거나, 기계·기구 등을 이용,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행위를 통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곧 약사법에서 무면허의료행위를 금지시킨 규정이라고 의료계는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약국을 방문하는 환자에 대한 문진행위와 그에 따른 약사의 조제행위(일반의약품)가 빈번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를 위반했을 경우 약국 등의 개설자는 1차 위반시 업무정지 3일, 2차는 7일, 3차는 15일, 4차는 1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의료계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약국에 대한 행정처분만 이뤄진다는 점. 약사가 이를 위반하는 행태가 실질적으로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데도 행정처분 기준(별표6 개별기준 38의 가)만을 준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약사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단 1회라 하더라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반면 해당 약국은 업무정지 등 약사법에 강도 낮은 행정처분 조항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약사에 대한 처벌조항을 적극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복지부가 약사의 무면허 진료행위를 방임하고 있다는 불평도 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의료법 위반 약사를 약사법에 의한 약국의 행정처벌로 무마시키고자 하는 계략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따라서 무면허의료행위로 볼 수 있는 약사법 시행규칙 제57조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을 때, 약국의 업무정지 처분 규정을 삭제하고 아예 의료법 제25조를 적용하자는 것이 의료계의 요구이다.
다만,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일반의약품에 대한 판매행위 사이에서 문진과 복약지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적지않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