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후 15년간 제약회사들의 외형은 꾸준히 성장했다. 정부의 대규모
약가인하와 경기침체라는 고비도 있었지만, 매출 만큼은 마이너스 성장이 없었다. 외형은 키웠으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했는데, 이 조차도 곧 만회했다.
약가를 깎고, 다시 회복하고 하는 이같은 패턴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그러나 2012년 일괄 약가인하는 제약사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있다. 위기 때마다 돌파구가 돼 줬던 제네릭도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부가 제약산업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 시점은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기도 하다.
의약분업 시행과 이후를 '1.0 시대', 일괄 약가인하 기점을 '2.0 시대', 2016년 부터 '3.0 시대'라고 한다면 '1.0 시대부터 3.0 시대'까지 국내 제약산업은 어떻게 변화했고, 변모해 가야할까.
데일리팜은 1999년부터 2015년까지 매출순위별 100대 제약사(국내 상장·비상장, 외국계 포함)의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 흐름을 살펴봤다.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은, 운전자가 승용차 리어미러(일명 백미러)를 보는 이유처럼 뒤를 보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 운전해 가기 위한 목적이다.
대규모 약가인하 때마다 영업이익 하락 패턴 이어져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015년까지 100대 제약사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해는 모두 다섯번이었다.
2003년과 2008년, 2011년, 2012년, 2014년에 영업이익이 직년 년도와 견줘 모두 떨어졌다. 영업이익이 떨어진 해는 외부요인이 많았다. 특히 정부의 약가인하가 결정적이었다.
2003년은 정부가 의약분업 이후 건보재정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실거래가에 따른 약가인하를 대대적으로 시행한 해다.
2008년 역시 전년도 약제비적정화 방안 시행에 따른 기등재약 목록정비로 약가인하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다.
2012년은 일괄 약가인하가 시행돼 제약업계의 충격파는 매우 컸다. 2011년 영업이익 감소는 일괄 약가인하를 대비하기 위해 제약사들이 구조조정에 착수한 요인이 컸다.
약가인하 조치에 반발해 제약회사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던 해도 2003년과 2012년이었다. 그만큼 정부의 약가인하 조치가 개별 제약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컸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약가인하가 이뤄진 해에는 대규모 경기침체도 동반됐다. 2003년에는 카드 대란으로 내수성장률이 곤두박질쳤고,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가 한국경제를 강타했다.
약가인화와 경기침체가 엎친 데 덥친 격으로 터져 이익을 내기가 어려웠다.
약가인하 충격 곧바로 극복...제네릭약물 중심
중요한 것은 약가인하로 이익률이 떨어진 다음해에는 반전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반전의 배경에는 제네릭약물이 한몫했다.
의약분업 이후 첫 브레이크가 걸린 2003년 충격파는 2004년부터 대형 제네릭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극복했다. 제네릭 시장은 2007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나오기까지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고혈압치료제 '노바스크'와 당뇨병치료제 '아마릴'을 시작으로 항혈전제 '플라빅스',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 고혈압치료제 '코자' 등 당시 의약품 매출순위 상위권약물들이 제네릭 출시에 의해 줄줄이 독점권이 깨졌다. 이같은 기조는 2008년까지 계속됐다.
실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평균 성장률은 두자리수에 달했다.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2013년 반전을 이뤄낼 때도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고혈압복합제 엑스포지와 성분이 같은 제네릭약물이 중심에 있었다.
식약처가 인정한 생동성인정품목 수도 이 시기에 가장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000개를 넘은 해가 2004년(1648개), 2005년(1051개), 2013년 (1143개), 2014년 (1078개)로 조사됐다. 대형 약가인하 이듬해 제네릭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더불어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신약들을 적극 도입하면서 외형 성장에 따른 수익성 개선 효과도 맛봤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2010년대 들어 시장 투명성을 위한 쌍벌제, 시장형실거래가제 등이 도입되면서 판촉비도 줄고 R&D투자비용은 늘어나는 대체적인 산업 건전화가 이뤄졌다"며 "또한 해외수출이 급증하면서 기업 수익성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다국적제약 점유율 하락...약가인하 직격탄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외국계 제약사보다 국내 제약사들이 컸다. 국내 제약사들은 약가인하 부진의 늪에 빠졌을 때 제네릭, 개량신약, 도입신약, 수출 등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반면 의약분업 이후 오리지널 위주의 고가 처방약 확대에 따른 수혜를 입은 외국계 제약사들은 점점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2000년 100대 제약사 중 외국계 제약사의 영업이익 비율은 17.9%였으나 2015년에는 6.2%까지 떨어졌다. 다만 매출액 비중은 2000년 22.8%에서 2015년 24.5%로 소폭 상승했다.
매출에 비해 영업이익 비율이 줄어든 것은 그만큼 약가인하의 영향을 외국계 제약사들이 더 받았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생산시설 철수, 공동마케팅 확대도 외자사 이익률 약화에 원인으로 지목된다.
R&D투자확대 새로운 흐름...제네릭 단기처방 한계 인식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2014년에도 100대 제약사의 영업이익이 감소된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2014년에도 경기침체가 이어지긴 했지만, 대규모 약가인하가 있었던 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보다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으로 인한 마케팅 위축, 연구개발비 확대가 더 큰 요인이라는 해석이 적당하다.
특히 연구개발비 확대는 주요 제약사들의 영업이익 축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미약품은 2014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이 전년보다 5.7%나 증가했다. 총 연구개발비만 1525억억원으로 전년보다 370억원을 더 투자했다. 이로인해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89%나 감소했다. 오창공장을 새로 지은 셀트리온제약도 전년보다 매출액의 5%를 더 연구개발비로 썼다.
이같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는 일괄 약가인하 시대에서 제네릭으로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특히 일괄 약가인하와 더불어 오리지널과 제네릭 동일가 조치, 리베이트 방지 차원의 판촉규제는 제네릭으로 성공하기 힘든 구조가 됐다.
실제 2012년에 비해 2015년 매출 50억원 이상 제네릭 제품은 약 13%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제네릭약물은 국내 업체 간 경쟁이 심한데다 새로운 약물 출현 등에 의해 장기간 수익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 반면 신약은 내수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도 있는데다 특허에 따른 시장독점권, 글로벌제약사에 라이센싱 아웃을 기대할 수 있다.
2014년 한미가 영업이익 급감에도 대규모 R&D비용을 투자한 덕에 이듬해 릴리, 사노피, 베링거, 얀센, 스펙트럼 등 다국적제약사에 기술수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국내 제약사의 R&D 확대기조는 인력변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제약협회에 따르면 2003년 연구직 인력의 비율은 전체 인원수의 8.1%였으나 2014년에는 11.8%로 늘어났다. 반면 영업직 인력 비율은 2003년 34.0%에서 2014년 28.4%로 줄어드는 추세다.
의약분업 이후 2007년 약제비 적정화방안, 2012년 일괄 약가인하 등 주요 고비때마다 제약사들은 제네릭과 도입신약 등에서 답을 찾았다. 그러나 제네릭이 힘을 잃은 3.0 시대에는 자체 개발 신약에서 동력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50대 기업 빨리 나와야...건전한 성장이 관건
일괄 약가인하 충격파가 R&D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제약사별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낳았다. 실제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전후 평균 매출액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을 보면 제약사별 편차가 심하다. 특히 최상위 제약사와 중소제약사의 성장률 격차가 크다. 일괄 약가인하 이후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윤택 실장은 그러나 동반성장도 중요하지만 국내 초대형 글로벌 기업 탄생이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제약산업이 건전화되려면 일단 글로벌 50대기업에 드는 선구자 사례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이를 통해 열심히 연구개발하면 누구나 글로벌 회사로 도약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새로운 성공모델을 창출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네릭 위주 내수시장의 한계를 깨닫고 신약개발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또한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벗어나 플랜트와 연계된 해외진출 등 차별화 전략에서 지속성장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동취재=데일리팜 제약산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