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기자가 본 심평원 '공채파동' 7일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한 번은 넘어야 할 고비였습니다. 지난 정부의 고용 창출 바람은 정권이 지나도 심사평가원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난 2일 심사평가원 신규직원 채용공고로 불거진 노사갈등에 "대체 누구 잘못이냐"는 물음은, 사실 무의미한 의문부호에 불과했습니다.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여만에 사태는 매듭지어졌지만, 완전히 봉합된 건 아닙니다.

사태를 처음 접한 기자는, 보도에 앞서 오랜 시간 고민에 빠졌습니다. 통상 보도를 하는 매체들은 기사가치를 판단할 때 '독자가 관심있을 만한 사안인가' 가독성은 떨어져도 '독자가 읽으면 도움이 될 사안인가'를 우선 염두합니다.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정부의 한 수행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말단직 채용 문제는 기사화는 할 수 있어도, 기사 가치를 즉시 판단하기에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지요.

사태 정황과 당사자에 가장 근접한 직원·경영진의 주장들을 걸러내 팩트를 확인하는 사이에도 기자는 거듭 되물었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신규직원 채용공고를 하면서 기존 6급 직원 수준을 5급으로 상향조정해 선발하는 데서부터 비롯됐습니다.

내부 직원, 특히 지난해 채용돼 6급으로 입사한 심평원 행정직원들과 정보공유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용안은 설익은채 그대로 공고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당사자들의 반발이 무리를 지었습니다.

6~4급으로 입사해 승진 형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3급은 바로 채용하는 형식이 나타나 3~4급의 반발도 이어졌습니다.

당장 뽑힐 후배가 상사가 되거나, 심평원에 입사해 바닥부터 시작해 온 직원들은 호봉부터 시작해 모든 조건이 불평등하다는 것이지요. 3급 심사간호직의 경우 심평원의 전문 업무 특성상, 입사를 하더라도 1년여 시간동안 '후배 아닌 후배'에게 일을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된 셈입니다.

그 때까지만해도 기자는 '누가 잘못했을까'보다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를 되물으며 시간을 벌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 일은 더 커져버립니다.

4일 낮, 경영진은 지하 대강당에서 비공개 설명회를 열어 공고 취지를 설명하고 해당 직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은 뜻하지 않게 아연실색 하게 됩니다.

심평원 직원들의 스펙 논란이었는데, "경영진이 우리에게 스펙이 낮다고 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입니다. 이 발언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6급 직원들을 하나로 규합하기에 이르른 거죠.

경영진은 "직원 스펙은 별로 좋지 않아도 열정 등 특이한 조직문화로 근무경력이 더해가면서 인적자원이 발전해가고 보건의료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취지였지만, 전달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적극 진화에 나섭니다.

그러나 6급 직원들은 노조 사무실로 올라가 사태 해결을 촉구합니다. 그 수만 70여명이라,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죠. 이 때가 노조의 1차성명이 나온 시점입니다.

노조는 본원 1층 로비에 천막을 치고 장기전에 대비합니다. 공공기관의 채용공고를 철회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출입기자들도 서서히 심평원으로 집결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천막이 꾸려지고 하루가 지나 손명세 원장은 노조를 찾지만 "안타깝다"는 말 밖에 전하지 못합니다. 이번 공채는 손 원장이 취임 2년차를 맞아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었기 때문에 경영진 입장에서 철회는 생각하기 힘든 해결책이었지요.

노조와 경영진 사이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문득 생각을 원점으로 되돌렸습니다.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다시 처음으로 말머리를 돌리겠습니다. 노사는 상처를 폭탄돌리듯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 사안은 내부 논의를 거치는 것과 논외로 한 번은 닥칠 묵은 문제입니다.

건보공단과 심평원 통합 이전의 고리짝 얘기는 접어두고, 이 사태가 불거진 가장 최근의 얘기를 해보자면 전 정부는 당시 공공기관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갑'과 '을' 채용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상당수 공공기관에서 '갑'은 대학교 졸업자를, '을'은 고등학교 졸업자를 의미합니다. 같은 말단 6급이라도 대졸자-고졸자에 따라 '갑' '을'로 구분지어 호봉 등이 결정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평균 초봉을 낮추고, 고졸 취업인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 기본 목적인데 심평원도 이 정책을 준수해 온 편이었습니다. 즉, 전 정부 시대 취업한 심평원 직원들은 기존에 비해 높지 않은 대우로 입사한 겁니다.

새 정부로 바뀌고, 손명세 원장이 취임하면서 신규 직원들의 대우를 상향(사실상 전 정부 이전 환원)하는 방안이 화두로 올랐고, 경영진은 원주 이전을 앞둔 지금이 적기라 판단한 것입니다.

일단 경영진은 이 사안 추진을 2016년 이후, 즉 손 원장 임기만료 후쯤으로 미뤘습니다. 지금만큼은 아니겠지만 갈등의 싹은 다시 돋아날 겁니다. 현재로선 당장의 문제만 수습된 셈이거든요.

무슨 일이든지 쌍방 갈등이 길어지면 서로에 대한 원망과 상처로, 잘잘못을 가리는 데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아주 미시적으로 말이죠.

이번에도 기자는 짧게나마 이런 원망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직원 안에 희생양을 찾는 듯 했고, 누군가는 손 원장을 비난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간부들을 탓했습니다.

아마 외부에서는 손 원장의 리더십과 경영미숙을 도마 위에 올리겠지요. '시험대'라고 규정하기엔, 취임 후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기자의 생각은 이제, 일주일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2일 신규채용 공고가 뜨자마자 희망을 걸고 입사원서를 접수한, 3000명을 훌쩍 넘는 청년들의 혼란도 무형의 피해일 겁니다.

청년실업자 38만명 시대에 그나마 서류전형에서 일단락돼 망정이지, 면접까지 과정이 넘어갔다면 공공기관이 멀쩡한 사람 두 번 울릴뻔 한 일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