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 종로구 통인동 행복한약국

정갈한 시골 읍내 같은 종로구 통인동 골목 어귀, 서울이 숨겨놓은 소박한 풍경의 동네 한켠 호젓한 약국 하나가 놓여져 있다.

문을 연지 6개월이 채 안됐지만 행복한 약국은 여행객들의 사진 속 모델이 되고 블로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병의원 인근 '각 잡힌' 약국의 전형에서 벗어나 골목 한켠에 자리한 약국 전경을 보노라면 여유와 따뜻함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행복한 약국 김지연 약사는 약국 개국 과정부터 남달리 공을 들였다. 하고 싶은 약국, 잘 할 수 있는 약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약국을 모토로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야 문을 열 결심을 했다.

약국으로 출근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김 약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발품'만이 살길…하고 싶은, 잘할 수 있는 약국 만들기 프로젝트

김 약사의 개국 과정은 여느 약사들과 분명 달랐다. 약사 본인의 마음 준비부터 단단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0여년 전 한차례 약국을 개국하고 근무약사로도 일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문제였다. 나와의 갈등, 환자와 갈등을 통한 내면의 혼란을 다스리며 약국에서 일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내면부터 다스리자는 생각에 스스로 자아개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더불어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연구했다.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자신을 얻은 후 본격적으로 개국 을 목표로 잡고 준비했다.

처방건수 때문에 약국 전문 컨설팅 업자를 만나 약국을 개국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영적으로는 풍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고 싶은 약국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결심한 게 '발품'이었다. 약국을 즐겁게, 잘 하는 약사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넉살 좋은 성격 덕도 있었지만 찾아다니는 약국의 약사들 역시 열심히 해보려는 김 약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약국 자리 역시 지역을 먼저 설정하고 일일이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했다. 일반 부동산에서 약국자리를 찾는 약사 모습에 동네 부동산 업자까지 놀랄 정도였다.

수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지금의 약국 자리를 얻었다. 약국이 있던 자리였지만 전 주인 역시 다른 업종으로 매물을 내 놓을 정도로 경영이 넉넉지 않던 자리. 하지만 김 약사는 이 곳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약국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이후 김 약사가 무엇보다 공 들인 건 약국 인테리어다. 동네 분위기와도 조화롭고 환자가 편안하게 머물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콘셉트에 맞는 약국 인테리어를 위해 김 약사는 또 한번 발품을 팔았다.

생각하는 약국 콘셉트를 설명하면 약국 전문 인테리어 업자들은 어려워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평소 알고 지내던 일반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그동안 자신이 눈여겨 봐왔던 한의원, 약국 등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었다.

1500여만이 채 들지 않은 비용으로 지금의 약국 동선은 최대한 살리되 카페같은 분위기의 아기자기한 약국이 완성된 것도 김 약사의 발품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

김지연 약사는 "약국을 오래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국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처방건수 때문에 컨설팅 업자 말을 듣고 약국을 선정하는 것 보단 내가 잘 할 수 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약국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는 것이 약국을 재밌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하루 처방 20건 남짓…환자 발길 끊이지 않는 약국

행복한약국의 고정 처방 건수는 하루 평균 20건 남짓. 그나마 인근 보건소가 있어 고정 처방 매출은 나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약국을 찾는 환자들의 발길은 잠시도 끊이질 않는다. 동네 특성상 고령의 동네 주민들은 이 약국의 주요 고객층이다.

꼭 처방전을 들고 오지 않아도, 약을 사지 않아도 어르신들은 약국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적게는 30년, 많게는 70년이상 이 동네에서 살며 역사를 만들어온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김 약사 역시 마음이 넉넉해 지는 기분이란다.

관광객들 역시 매약 매출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종로의 효자동, 통인동 등이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면서 일반 행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종종 약국을 찾곤 한다.

고정적으로 상담을 위해 찾는 고객도 점점 늘고 있다. 김 약사는 별도 환자 상담차트를 만들어 환자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주민들이 대다수지만 외부 고객도 늘고 있다.

처방 건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김 약사가 그저 편하고 여유로운 약국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에게도 잘 되는 약국 경영은 목표이자 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약국을 하면서도 경영까지 잘되는 약국이 과제이기 때문이다.

개국 전 예상보다 높은 수익이지만 김 약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 주 고객층을 고려해 행복한약국만의 특화를 찾아 경영 활성화를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하고 변화를 추구할 계획이다.

김 약사는 "근무약사 시절 촉박한 복약지도, 상담 시간이 늘 아쉬웠다"며 "환자와 여유롭게 상담하며 그 속에서 수익 모델을 찾고 항상 관심을 갖고 있던 유기농 식품 등 나만이 잘할 수 있는 특화점을 찾아 특별한 약국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