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노조 "극단적인 대결구도 도움 안돼" 공감

한국와이어스 노동조합이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시켰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임금협상 조정이 불발되자, 노조가 벼랑끝 전술로 파업이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하지만 노조 측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단체행동이 회사 뿐 아니라 노조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와이어스 노조는 지난 10일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조합원 90%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쟁의행위 의결안을 통과시켰다. 전체 조합원 중 76%가 참석한 찬반투표였다.

그러나 분리법인인 ‘컨슈머헬스케어’(OTC) 소속 조합원들이 미리 예정된 수련회 때문에 임·총에 참석하지 못하고 ‘파마’(전문약) 쪽은 99%가 투표에 참여한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9명이 파업의사를 밝힌 셈이다.

조합원들의 의지가 이렇게 강한 것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임금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들은 지난해 회사매출이 38.78%나 고성장했기 때문에 올해 두자리수 이상을 인상, 다른 다국적 제약사와의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열망이 컸다.

따라서 회사 측이 제시한 기본급 대비 7% 인상안은 수용은 고사하고 ‘분노’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총에서는 노조측이 제시한 18% 인하안에 대해서도 비판론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18%도 너무 낮다. 최소 20% 이상은 인상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논의 끝에 노조 집행부에 임금협상을 위임키로 최종 결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정했다.

노조 "노사평화공동선언 계승"···재협상 제안

노조 집행부는 그러나 파업일정을 잡는 데 신중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애초부터 파업카드를 염두 하지 않았던 데다, 합자회사인 유한양행과의 관계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노조 관계자는 “와이어스노사는 지난해 ‘노사 평화공동선언문’을 발표했고 노조는 이 정신을 유지·발전시킨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면서 “회사의 안정과 발전이 곧 노조의 안정과 발전이라는 원칙에 입각, 원만한 협상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재협상 의지를 천명했다.

노조는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임·총 직후 사측에 13일 재협상을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임·총 논의결과를 사측에 전달하고 교섭타결을 위한 접점을 타진할 계획이라고 노조 관계자는 설명했다.

재협상과 전향적인 협상타결에 대한 기대는 회사측도 다르지 않다. 특히 파업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사측의 조바심은 더 커 보인다.

회사 측 관계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대결구도보다는 노사협의를 통해 해법을 찾고 발전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자는 게 사측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측 "실질임금 10%대 인상···전향적 자세" 주문

실제로 회사 측은 최근 공식 논평을 통해 “노조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임금협상을 타결하고자 한다”면서 “노조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고 밝혔었다.

회사 측은 특히 “7% 인상안 외에 직원급여 보상체계 강화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했다”면서 “기본급 7% 인상의 실제 체감 효과는 10%대의 인상율”이라고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이어 “임금협상에 대한 회사와 노조의 공통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한국와이어스 전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돌려 줄 수 있는 합의점에 이르는가’이다”라며 협상타결 노력을 노조 측에 재차 촉구했다.

노조 측의 18% 인상안과 회사측의 체감효과 10%대 인상율은 상당부분 접점을 찾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제는 임금협상 이외 부속쟁점에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는 데 있다.

노조 측은 이번 임금협상에서 임금인상안 외에 ‘5대 요구사항’으로 불이행된 단체협약 신속이행, 노조탄압과 위원장 해임 음모중단 및 사과, SMTP 정책폐지, 감사결과 2차 징계 세분화 등을 내건 바 있다. 임·총에서도 임금 외 나머지 쟁점을 주요 협상쟁점으로 채택했다.

이른바 '경영권 논란' 종지부가 핵심키 될듯

반면 회사 측은 SMTP나 감사결과 집행 등은 노조의 권한을 벗어난 경영권의 문제라면서 협의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 측 논평에서도 “임금협상은 임금과 관련된 논의라는 협상의 목적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말로, 임금협상과 다른 쟁점을 분리해야 하고 더 나아가 경영권 영역은 회사 측의 권한을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했었다.

자존심 싸움처럼 확산돼 버린 경영권 논란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결국 임상인상안보다는 양측이 이른바 ‘경영권 논란’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사실상 이번 임금협상을 타결 짓는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SMTP 등을 노조가 인정 또는 수용하는 조건으로 회사 측이 획기적인 임금정책을 제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회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임금 이외 직원복리를 위한 문제에 대해서는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항상 환영한다”면서 “다른 쟁점으로 임금협상이 가로막히지 않도록 노조가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약 노조가 이를 수용할 경우 양측은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라는 성과를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조차도 그동안 지속돼온 갈등관계의 책임론을 일소하고,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에 대한 후속제재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전제가 수반돼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 양측 모두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협상테이블에서 과연 구현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